문학, 예술, 철학, 건강, 환경, 교육 문득 우리는 아름다운 외형적인 것 어떤 것이 더이상 그리 유용하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순간이 그리 머지 않아, 어떤 이에겐 바로 어제, 오늘 도달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로 나 또한. 나는 이제 내가 살 수 있거나 사고 싶었던 옷이나, 가구나 인테리어 소품들이 지겹다 못해 지긋지긋하다. 소유해야 안심할 수 있는 주거의 형태조차도. 내가 기꺼이 투자하고 싶은 것은 아이와 나와 남편의 내적, 신체적 성장이다. 신앙과 철학, 자유와 사랑 등 배우고 싶은 가치에도 있다. 내 아이와 아이의 친구들이 살면서 얻길 바라는 것들. 건강과 건강을 위해 공존해야 하는 환경문제. (정신적인 건강을 포함하여) 더 가지고자 하는 욕망으로 고통스러워 하며 살아갈 사회가 아닌, 생애..
아름다운 것들을 블루라이트가 나오는 화면으로 집요할 만큼 찾아왔다그것이 나든 내 가족이든, 더 근사하게 변화시켜 줄 것 같았나보다그러나 더이상 그것들로 인한 만족을 느끼지 못한지는 오래되었다 그리고 깨달은 지도 신물날 만큼 오래된 것 같다습관처럼 무서운 게 없다더니 역시 그러하다외적인 것들은 피로와 갈증을 불러왔다글을 꾸미는 것도 마찬가지. 예채를 가지기 전에 상훈이 오피스텔을 다니며 하루 이틀만에 그려둔 하늘색 바닥이 있다그 작품을 지난 서교동 집에 걸어뒀었는데 그 추억에 새로운 색감을 입혀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만족스럽지 못한 가능성이 너무 크지만 내가 받아들여야 할 나의 나태의 결과라고 인정해야 겠다내 탐욕의 결과물인 옷가지들로 잠식된 저 쪽 방을 치우고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당장적게 천천히 먹었지만..
그러나 그 후에나는 씨알로 가득 찬 열매처럼, 땅 속으로떨어지게 될 것이다. 비록내 숨결은 끊어져 내 육체는 썩을지라도,그 썩은 내 육체는 곧 새로운 육체들을만들 것이며, 그래서 싸움을 계속하리라. -니코스 카잔차키스, nutrisco씨앗이라는 의미의 저 단어로 나를 지칭하고 싶었다나는 양분을 주며 소멸되어간다 라고이제는 어느 책에서 띄어낸 것인지도 기억나지 않은, 10년도 전에... 그로부터 지금의 내 삶은 어떤 형태를 보이고 있나절망이 아닌 희망으로 내 삶을 다시 다듬고 때리고 기도하고 싶은 12월의 중간이 지난 날
물감을 짜고 섞어서 브러쉬에 뭍혀 바르는 작업. 얼마만인가- 기획은 벌써 지난 봄이었는데 이제야 시작한다. 이제 바닥을 발랐는데, 실제 색감은 얼마나 더 아름다운지 말하고 싶어서 떨린다! 왜 잊혀지지 않았을까 화이트와 프러시안블루 까지의 거리감에 감추어진 인생의 오버랩이. 어떻게 내 마음 속의 작품이 캔버스에 표현될 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어미가 복중의 아이와 마주볼 날을 기다리듯 기다려진다. 손이 굳었고,원래 부족하던 스킬에 대해서 아쉬움이 있지만 작품이 나를 받아들여 준 것처럼 나도 나 자신에게 모성애를 가지려고 노력중이란다.^^ 작업실로 자신의 오피스텔을 빌려준 동생이 나보다 더 긴시간 린시드와 파라핀의 냄새를 맡아야 할 텐데. 고맙구나.
너를 이루는 말들 | 김소연 한숨이라고 하자 그것은 스스로 빛을 발할 재간이 없어 지구 바깥을 맴돌며 평생토록 야간 노동을 하는 달빛의 오래된 근육 약속이라고 해두자 그것은 한 번을 잘 감추기 위해서 아흔아홉을 들키는 구름의 한심한 눈물 약속이 범람하자 눈물이 고인다 눈물은 통곡이 된다 통곡으로 우리의 간격을 메우려는 너를 위해 벼락보다 먼저 천둥이 도착하고 있다 나는 이 별의 첫번째 귀머거리가 된다 한 도시가 우리 손끝에서 빠르게 녹슬어간다 너의 선물이라고 해두자 그것은 상어에게 물어뜯긴 인어의 따끔따끔한 걸음걸이 반짝이는 비늘을 번번이 바닷가에 흘리고야 마는 너의 오래된 실수 기어이 서글픔이 다정을 닮아간다 피곤함이 평화를 닮아간다 고통은 슬며시 우리 곁을 떠난다 소원이라고 하자 그것은 두 발 없는 ..
2004년 여름방학 때 회화과 교수님에게 제출했던 내 첫 그림을 찾으러 학과사무실에 갔을 때 행방을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르꼬르뷔지에의 롱샴성당은 나에게 예술작품을 마주했을 때 떨림을 준 첫 작품으로, 잊을 수 없는 의미의 작품이다. 그래서 오일페인트로는 처음 그린 그림의 대상은 롱샴일 수 밖에 없었고, 르꼬르뷔지에를 특별히 좋아하는 건축전공의 내 동생이 그 작품을 참 좋아했었더랬다. 롱샴은 어찌보면 동생과 공감의 첫 열쇠인 듯도 하다. 오늘 문득 내 첫 그림이 너무 그립네. 거칠고도 부드러운 레드컬러와 낮은 채도의 그린을 잘 썼던 작품이었는데. 분명 무명의 학생작품이었더라도 너무너무 맘에 들어서 몰래 가져가버린 거겠지?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아 보고싶다. 서울에 올라가면 베란다에 가둬두었던 그림들 ..
깨어 있다는 건 정신적으로 각성하고 있으며, 영적으로 하나님을 향해 주의를 기울고, 나쁜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며, 기도할 여유 공간을 만들어낼 줄 안다는 뜻이다. 옛 사막 교부들의 유명한 경구 " 푸제, 따체, 엣 꿔이셰! ( fuge, tace, et quiesce : 고독, 고요, 내적인 평안 가운데 살라)" 를 몇 차례 되뇌었지만 그렇게 사는 건 고사하고 그럴 의지마저 약하기 이를데 없음을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 ... 마음이 그토록 무거운 건 바로 영적인 주의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세상을 향한 집착이 서글픈 마음을 불러일으킨다는 참으로 정확한 지적이다. ... 고요하면서도 리드미컬하고 견고한 삶의 '다른 측면', 즉 불안정하게 일렁이는 내 인생의 바다 밑바닥을 관통하는 깊고 한결같은 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