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에서 지하철을 타고 당산철교를 지날 때마다 한강을 내다본다. 여의도가 보이고, 강을 끼고 양쪽으로 높다란 건물들이 보일 때마다 나는 맨 처음 서울에 상경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된다. 그때 나는 서울을 좋아했다. 큰 도시에 살아서 내가 커지는 기분이 들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서울을 이제 나에게 너무 싫은, 그러나 너무 익숙한 도시가 되었다. 서울에서 살면 나는 자꾸 원치 않은 어떤 욕망에 감염된 느낌이 든다. 자꾸 원치 않은 길 위에 서서 원치 않은 방향으로 이끌려가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매번 애를 쓴다. 욕망을 점검하고 취사선택을 하느라, 방향을 측정하면서 이탈과 탑승의 타이밍을 체크하느라, 나다움을 지키기 위해 지나치게 용의주도해지고 지나치..
문장과 내용의 깊이에 대한 기준이 높아서 글을 쓸 수 없는 지경에 닿은지는 오래된 일이다. 이것이 허영이라고 해도 별 수 없다. 그래서 지금 적고 있는 문자들에 대해서 스스로 강조해야 했다. 이건 분비물과도 같은 것이라고. 삶을 살아내면 그 내면에 묵은 때처럼 언어들이 쌓인다. 나는 현재를 방관하고 과거를 지워가며 미래를 희망하지 않는 편이다...라고 하면 너무 비관적인가- 이렇게 정의하고 나면 내가 이 정의에 갇히는 느낌이 참 맘에 들지 않는다. 나는 꼭 이렇지는 않다. 다른 여지도 많고 변수도 많아서 가끔씩은 찬란한 만족감을 느끼기도 하고 은총 아래에서 전율하기도 한다. 요즘 내 관심사는 수납이다. 어떻게 말끔하게 수납할 것인가. 수납이라는 카테고리로만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도 있는 바로 일상의 그 ..
처음 좋아하게된 사진작가가 김명철인 것이 어느 우연의 경로인지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오랫동안 그의 이름을 잊고 지냈는데, 최근 민병헌의 작품을 보고 난 뒤 그의 사진들 너머에 있던 우리나라 전후의 다른 한 켠을 찍었던 김명철의 사진이 떠오르는 흐름은 나에겐 무척 자연스러웠다. 보고싶다. 몹시도 그립다. 나도 그와 같은 숨죽인 탁 트인 자연을. 건조한 풀들의 냄새를. 나와 동생에게 있어서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의 산골생활은 도시생활에서 전원을 향한 끊임없는 갈증을 일으키고 우리들의 감성에 모티브로서의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어릴 적 문득 혼자서 바라봤던 그 하늘, 그 들판에는 김명철의 새가 날아들고 곱고 앳띤 우리 엄마는 김명철이 찍은 양산든 여인의 뒷모습을 하고 있었다, 김명철과 관..
점유, 소유라는 제목의 작품 앞에서 한참을 숨을 죽였다 빛의 방향에 따라 저 깊은 어두움 속에서 푸르름(프러시안 블루)이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는 가운데 홀로 몸집보다 큰 수레를 끌고가는 사람의 고독과 침묵을 관객에게 흘려보내준다 클래식한 기법과 구도를 사용한 게 진부함이 아니라, 되려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이름을 거는 많은 작품들과 구별되는 신선함과 무게감이 있어서 참 좋았다 좀더 아카데믹한 과정을 더 하고 싶은 열망을 억제하기 힘들었고 작가의 '흔적만으로도 그 존재에 대해서 표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보다 적극적인 대답을 하고 싶어졌다 전시는 학고재 갤러리에서, 아래에 기사의 일부과 출처를 첨부한다. 학고재갤러리는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는 독일 현대회화를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뉴 라이프치히파..
왠지 그 아이의 눈빛이 나에 대해 비난을 품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여러번. 나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확신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해주는 그 눈빛을 한 명. 이 아이에게는 오래된 호의가 가득한 눈빛을 주고받는게 익숙했는데...이틀 연달아 그러한 느낌을 받아버리는건 단지 나의 소심함과 자기피해의식일까. 그렇다면 그건 다행인가 불행인가. 왠지 그 아이의 눈빛을 만나면 나에 대한 서운함. 오래된 서운함. 그래서 상처입은 듯한 아픔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섯불리 다가서기엔 뒷감당이 엄두가 안난다. 이건 내 안에 있는 그 아이에 대한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의 마음과는 다르기때문이겠지. 미안해. 진심으로 미안해. 왠지 그 사람의 눈빛을 만나면 가볍고 유치한 나에 대한 서투른 판단과 인스턴트같은 대응들에다가 자신을 멋지게 포장..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 왠지 마음이 엉키고 엉켜서 어디서부터 풀어야할지 모르겠는 그런 날 있지. 그래서 말씀을 적으면 혹시나 매듭이라도 찾을까 싶어서. 미칠 것 같다. 그걸 하기도 싫은데 그걸 안하는 건 안될 것 같은 그런 힘든 결정이 하나 둘 셋 정도. 안하면 왜 안되는데? 라고 대담하게 물어본다. . . . 세시간 못지나서 마음이 풀려버렸다. 오빠에게 내가 왜 기분이 나쁘냐면... 하면서 부끄럽고 유치한 두가지 이유를 이야기하고 "봐줘요~"했다. 그리고 나서 갑자기 아랫배가 살짝 아프다. 아, 이유를 알았다. 생리할 때가 다가오면 영문도 모르게 것잡을 수 없이 기분 나쁠 때가 있는데 딱 그거였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