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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st Essen Seele Au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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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n der Quelle bis heute 2013. 7. 22. 11:22

 

 

 

합정에서 지하철을 타고 당산철교를 지날 때마다 한강을 내다본다. 여의도가 보이고, 강을 끼고 양쪽으로 높다란 건물들이 보일 때마다 나는 맨 처음 서울에 상경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된다. 그때 나는 서울을 좋아했다. 큰 도시에 살아서 내가 커지는 기분이 들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서울을 이제 나에게 너무 싫은, 그러나 너무 익숙한 도시가 되었다. 서울에서 살면 나는 자꾸 원치 않은 어떤 욕망에 감염된 느낌이 든다. 자꾸 원치 않은 길 위에 서서 원치 않은 방향으로 이끌려가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매번 애를 쓴다. 욕망을 점검하고 취사선택을 하느라, 방향을 측정하면서 이탈과 탑승의 타이밍을 체크하느라, 나다움을 지키기 위해 지나치게 용의주도해지고 지나치게 예민해진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피로하고 피로하다. 에워싼 것들을 적절하게 저항하는 것만으로도 지치기 일쑤다. 어떨때는 멍청이가 된 것 같고, 어떨 때는 쪼다가 된 것 같고, 어떨 때는 비열해지는 것만 같고, 어덜 때는 비루해지는 것만 같고, 대부분 낙오되는 것만 같다.

 

낯선 생활방식을 가진 낯선 사람을 목격하는 어떤 아침에 대해 나는 시를 썼다. 낯선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는 달라진다. 익숙했던 내가 낯설어진다. 익숙했던 것들이 각질처럼 떨어져나가고 낯선 것들이 익숙해지는 나를 만난다. 나의 시선은 타인에게서 시작되어 나에게로 되돌아온다. 되돌아온 나의 시선에는 다행스럽게도 나에 대한 온정이 회복돼 있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나에겐 이게 우선 가장 반가운 일이다.

 

이제 나는 여름의 나라로 돌아가 몇 년 동안 써왔던 시들을 다시 들여다볼 것이다. 그때 작은 기적이 일어났으면 한다. 행간에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를, 시어와 시어 사이에 불현듯 흐르는 것들을 내버려 둘 수 있기를. 내가 만난 모든 것이 시가 되길 바란다.

 

 

 

 

 

- 김소연, '낯선 사람이 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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