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제 갈 길로 떠나고 혼자 남는 시간은 불과 다섯시간 그제서야 서늘한 공기를 마시고 공간의 한숨을 들을 수 있다오래전부터 아프리카 사람들이 따가운 대기 속에서 마시던 뜨거운 쓴 잔을 나도 한잔 마시고그들과는 다른 사치를 꿈꾸며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음을 친밀하게 감상한다눈 앞에 놓인 것들이 모두 비워지는 그림을 그리며 그림을 그릴 캔버스는 몇 호로 마련해볼까 계산을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이 모두 허무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을 공허라고 부르진 말자낡은 슬픔이 배인 몸짓을 함께 위로해주자 골목 어귀에서 버려진 오래되고 한 때 흔해빠졌던 밥상위에서 오늘의 밥상도 차려지고 인터넷 화면도 제각각 변해가는 이 날의 소란을 고요라고 불러보자 너와 나의 간격을 파도라고 생각해우리는 먼 바다에서 만난 반가운 물고기..
어제 남편과 비긴어게인을 보는데, 이소라씨가 하는 말의 울림이 길다"내 삶의 존재이유나 목적이 노래인데, 내가 노래를 대충 해버리는 나는 아무 것도 아닌게 되잖아"이런 내용.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걸로 살아가는 데에 무감한 듯 느껴진다아무 것도 아닌 걸로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채우고, 의미 없는 것들로 시간을 보내버리고, 특히 내가.스스로에게 그렇게 진지한 사람.그래서 예민하고 까다로워 보일지라도 끝까지 애써보는 사람.이소라 라는 사람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비가 이렇게 반가웠던 적이 있을까 싶을만큼 비가 반갑다대기에 가득한 미세먼지를 씻어주길 바라며... 하루에 안정제 두 알을 처방받았다그리고 나는 그리 심한 편이 아니며, 일시적인 피로에 의한 것 같다는 위안도 처방해주었다지친 마음으로 엄마를 역할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그랬더니 예채는 더 칭얼거리고 요구를 지속적으로 하는 건지... 여튼 마음이 온종일 가라앉고 지쳐있다사는 게 쉽지가 않는데 원래 사는 것이 쉽지가 않아야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그래야 성장을 하는 거니까하고 위안을 스스로에게 내렸다
아침부터 남편 서재를 정리했다 그리고 정갈한 상태를 마련했다 그럼에도 마음은 여전히 심란해 빌 에반스 my foolish heart 를 켰다점차 잦아들겠지 기다리며... 요즘 마음이 편치 않다이럴 때도 있는 것. 집안 일도 조금 벅차다그래도 어제 많은 일을 해결했다공용 욕실 문을 고치고, 비데도 설치하고 공용 욕실 수전관도 고치고...원호네가 와서 커튼도 달고 거실 커튼레일도 달았고, 미싱을 사서 커튼을 달고 소파 커버를 씌우기가 남았다손님방을 정리하고, 예채방을 정리해야하고, 선반을 달고, 서재 베란다 정리도 남았다이사는 너무 버거운 일인 것이다그래도 이 집이 좋다
잠이 오지 않는다오전이 곤욕이지만 (한국에 와서 아직 오전에 일어난 적이 없다)조용하고 깊은 밤에 깨어 있는 것은 한편 좋다밤은 사색에 기대기에 좋은 무대를 가지고 있다잠시 아파트 마당에 나가서 걸었다우리 아파트는 산자락에 있어서 공기가 확연히 다르게 느껴진다그리고 정적이 늘 고여있다아파트 마당에서 보니 조용한 남편의 방이 환하다그가 자신의 방에 있을 때의 시간을 가만히 축복한다깊은 사유를 횡단하기를... 마음의 부스럭거림이 잠잠해지기를 눈감고 토닥토닥 쓰다듬는다'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라고 했던 시인의 마음을 더듬는다엉켜있는 이미지들이 파스라히 소각되고 본연의 푸름 만이 대지에 적셔들기를 _ 내일은 예채가 "엄마 나랑 이거하고 놀자' 할 때 핸드폰도 들여다보지 않고 컴퓨터도 키지 않은 채..
작은 아이 한 명과 함께한 지 4년이 다 되어가는 내 속사정은 육아로 인한 것이라기 보다는 장시간 성찰을 하지 않고 쌓여가는 소음과 탐욕에 노출되어, 삭막해진 정신으로 살아가는 피로로 지쳐있다책 한권 읽지 못하는 산만한 나의 내면은 일기를 쓰는 것 조차 힘들고 기도는 더욱 숨에 차다그 찬 숨으로 겨우 짧은 기도를 하고 나면 그 기도 속에 깃든 나의 진심과 고통이 하나님께는 닿을 것이다 라는 기대가 대충 마무리를 짓는다오늘도 시차에 허덕이며 대충 하루를 떼웠다 식사를 고민하고 예채와 시간을 보내고 집을 치우고 나면 하루치를 다한 듯한 느낌으로 대충 갈무리를 한다그리고 지금은 새벽 4시에 가까워지는 시간.어렵게 애써서 김기석 목사님의 글 조금을 읽었다그 분의 편지를 보아 지금 외국에서 시간을 보내고 계신 것..
난관에 봉착했다가진 게 별로 없는 우리에게 집주인이 월세인상을 요구 하셨고 우리는 전세로 변경하거나 매매도 생각하고 있었고 아주 젠틀하신 집주인이 왜인지 받아들여 줄꺼라 은근 믿고 있었었다 ㅠㅠ그리고 집을 보기 시작하고 있다사실 이곳에서 더 살고 싶다그것도 지금 살고 있는 이 아파트에서...처음 이사왔을 때 정원을 걸으며 끝없이 느끼던 감탄들도 여전히 여운이 짙고,우리 맞은 편 아파트로 갈까 고민도 되지만 남편의 출퇴근과 예채의 유치원 통학을 생각하면 유치원 옆 산자락으로 가는 것이 합리적인 것 같다 안그래도 전원생활도 너무 하고 싶었고..그런데 집이 너무너무 심하게 부티가 나는데 이것이 나의 심미안을 거스른다소박하면서도 취향이 반영된 집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집주인이 되어서 다 뜯어내지 않는 한 입구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