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밭 한 뙈기 못 얻었지만, 이 성을 쌓는 데 온 힘을 다 기울였다. 나의 수하 사람들도 그 일에 힘을 모았다.
인근 여러 나라에서 찾아오는 사람을 제외하고 내 식탁에서 먹는 유다인 관리들만도 백오십 명이나 되었다.
식탁에는 나의 부담으로 날마다 소 한 마리, 기름진 양 여섯 마리에 새고기도 올랐다. 갖가지 술도 한번 나오면 열흘씩 넉넉히 돌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총독으로서 받아야 할 녹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백성은 부역으로 허덕이는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하느님이여, 이 몸이 이 백성을 위해 한 모든 일을 기억하시고 잘 보살펴 주십시오!
<공동번역>
지난주 끄트머리부터 아침에 모새골 묵상집으로 아침 묵상을 한다.
이 묵상집은 그날 묵상할 성경을 번역해둔 것인데, 임영수 목사님의 특별한 주석이나 글 없이 구성되어 있다.
5월16~18일 남편과 다녀온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모새골에 들러서 그 때 구입한 것.
우리 부부의 요한복음 묵상은 얼마간 멈추었는데 그것도 다시 시작해야겠다, 여튼.
묵상집에서는 14절부터 마지막절까지 표준새번역으로 수록되어 있었는데 그 장 전체를 공동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보았다.
느헤미야는 본인에게 합당한 수입을 백성을 '보는' 눈을 가졌기 때문에 '듣을 줄 아는' 귀를 가졌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불이익이 분명한데도 받지 않았다.
이 태도는 그릇이 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결혼을 하고 살림을 살아보니 이 일이 얼마나 크게 느껴지는지. (살다보면 같은 일을 접해도 그 일에 대한 해석은 나의 현실과 살아온 시간에 따라 재해석되는데, 그것은 몹시 흥미롭고 경이롭다.)
오늘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된다.
어떤 일을 하고 그 댓가를 얻는 것은 정직하고 정당하며 당연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나에게 불이익이 되더라도 보다 큰 이익을 위해 그것을 포기하는 일은... '그것도 12년 동안'의!
일시적이라면 또 모를까,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큰 이익.
얼마전 엄마가 아는 분이 큰 학원을 팔게되셨는데 그 분의 계약 철칙이 기억난다.
'파는 사람의 이익보다 사는 사람이 잘샀다 생각되게 파는 게 좋다.'라는-
그 말에 엄마와 나는 한참을 감동했었는데..
그 분도 멋지지만 그건 또 어떤 사람의 정의감 일 수 있겠다. 자기 만족을 동반하는.
느헤미야가 큰 이익을 선택한 이유는 자신의 가장 큰 소득(상급)이 하나님 그 분 전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걸 느헤미야는 확신하고 있었고 지혜롭게도 현실에서의 삶에 명확히 적용되고 있었기에 그는 12년 동안이나 그러한 선택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도 느헤미야와 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고, 하나님을 확신하고 살고 싶다.
나와 내 가족이 현실에서의 삶에서 불이익을 기꺼이 선택할 줄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큰 이익을 향한 결정을 기뻐하며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삶을 명예로워하며 은혜가운데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