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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양분을 주며 소멸한다

사사기 8:22~35

Von der Quelle bis heute 2011. 3. 28. 12:19
300명의 군사만으로 135,000명의 미디안 사람들과 전쟁을 하게 된 이스라엘 민족은 그 드라마틱한 사건을 전두지휘하시고 홀로 싸우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빨리도 잊어버렸다.
"그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22절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언제나 당신의 능력이나 높으심, 높으심으로 인해 높으심으로 손가락을 향하기도 미약한 피조물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도 있는 두려움 등의 것들로 우리를 지배하신다거나 군림하시는 것이 아닌, 우리가 당신 자체를 기억하길 원하시는 것이 성경 전반에서 느낀 하나님의 마음이었다, 나에게는.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도 하나님....이라는 찬양을 몇주동안 남편이 틈만 나면 계속 찬양하고 있는데_ 지으신 이를 기억할 때에만 지음받은 자들의 삶의 의미나 존재의 가치가 바르게 실현될 수 있는 단순한 사고의 흐름을. 일상을 사는 우리는 잊기가 참 쉽다.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23절
우리 주변에도 이러한 굵직한 이슈들이 매일 새로 인터넷 포털을 채우고 있다. 가령 리비아 사태나, 일본의 대지진.... 만약 그렇게 사람의 힘으로는 단기간의 해결을 기대하기 하려운 일에 어떤 지도자가 나서서 짧은 호흡으로 그 일을 종결지었다고 하자. 그 일을 종결하신 분은 정작 하나님이시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눈에 보이는 지도자를 먼저 인식하고 숭고함 등의 감성도 동시에 생겨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본문에서의 무리들은 다른 대중과는 좀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그들의 아버지나 아버지의 아버지는 실제로 구름기둥을 보았고 불기둥 아래에서 몸을 녹였던 이스라엘 민족이다. 바닷물이 성처럼 높이 쌓여서 마른 길을 내어주던 이스라엘 민족이다. 그리고 지난 날 나의 고통을 더 아파하셨으며 내가 주님을 바라보기만을 기다리셨다던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나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들을 사람을 먼저 보고, 입으로는 하나님을 마음으로는 어떤 존경의 대상으로의 사람을 향한다. 그런 그들을 향해 그 존경의 대상은 멋진 말을 한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에봇은 당시 제사장이 입는 원피스형의 제복인데 그 것을 기드온은 왜 금으로 만들어 자신의 성읍에 기념하여 두었을까.
당시 광야생활을 마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셨던 것은 회막과 회막안에 구성된 것들이었다. 그 부분을 성경으로 읽어나갈 때 지루할 만치 세밀하게 알려주셨던 그 하나님이 계신데, 그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써의 마음가짐으로 임하겠다는 의지로 금 에봇을 만들었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 먼저 묻지아니할만큼은 교만했던 것 같다. 그가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자신의 그러한 성결한 마음가짐이었거나. 어쨌든 그 자신이었었나.
이렇게 우리는 자신을 높이려는 어떠한 몸부림 속에 자신의 가족과 한 나라 전체를 올무에 묶는 위험을 인지해야 한다. 교만은 자신만의 목숨을 거는 무모함 정도가 아니라는 것.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더라"
                                        -31절
아비멜렉의 아비는 우리나라의 아버지를 의미하고 멜렉은 왕을 의미한단다. 내 아버지는 왕이시다 라는 이름.
당시 이름을 짓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어머니였는데, 그 어머니의 가치관이 기드온을 왕으로 여겼건, 기드온이 그렇게 스스로를 여겼건 기드온은 70명의 아들을 둘만큼 많은 아내를 두었고 그만큼 왕처럼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그 생활을 그가 스스로를 왕으로 여김과 닮아있다. 그는 300:135,000의 전쟁의 표적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온 삶으로 그 전쟁의 주인공이 누구셨는지를 증명하는데 오류를 범했다.

훗날 기드온의 70명의 아들을 모두 죽임을 당하고, 이스라엘은 깊은 고통 속에서 다시 다음 사사를 만나게 되면서 다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잔인한 핏내나는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오늘 내가 이 성경을 만나게 되기까지 이스라엘 민족들을 훈련하시고 모든 민족들 앞에 모델로 쓰신다. 남편이 이야기한 장남에 대한 좀더 가혹한 기준처럼.
사사기 전체는 하나님의 전쟁을 이야기한다. 사람이 주체가 아닌 하나님의 전쟁.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이 사람의 교만함이나 어리석음으로 주체가 사람으로 변질 될 때 빚어지는 초라한 음란함은 오늘 하루로도 내가 얼마든지 만날 수 있을 현장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시옵소서.
저는 묵묵히. 저의 자아를 향하지 않고 주님을 향하기만 소원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주인되셨을 때의 그 자유와 그 풍부함을 저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주님을 향하는 것은 두렵거나 무책임한 이율배반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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