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eternal line

긍휼

Von der Quelle bis heute 2010. 2. 6. 22:36

 

아빠하나님

아내와 함께 기도하다가
며칠 전 아내가 내게 농담처럼 한 말,
아늑한 거실에 햇볕 드는 집에 살면 좋겠다는 말을 기억케 하셨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적처럼 선물하신 집인데
온유가 태어나고 기기 시작하면서 구석구석 부딪히는 것을 보고 그런 말을 하게 된 것이다.
말 그대로 농담이었는데 하나님은 우리가 말하는 한 마디도 기억하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으로 이사올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라고 아내와 함께 간증할 만한 첫 번째 것이었다.
서울에서 6번 정도를 이사하며 그 때마다 이런 간증들이 있었다.
어느 날 곰팡이 핀 집에서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며
“아빠, 하늘 아래 바람 부는 곳에 살고 싶어요.
이렇게 기도했다가 금방 기도를 취소해 버렸다.
왜냐하면 곰팡이가 피어있고, 물이 떨어지는 집이었지만
하나님이 거하시는 이 곳이 내게 궁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도 들었다.
“하나님은 내 아빠이시니까, 내가 힘들 때 함께 힘드시죠?
그러니 아빠 하시고 싶은데로 하세요.
조금 뒤 한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하나님이 너 기도를 시키시더라.
너 혹시 지하에 살고 있지 않니?
너 빨리 이사가라신다.
“응? 어디로?
“하늘 아래 바람 부는 곳으로..
내 목소리 하나 하나 놓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나를 향한 아빠의 지극한 그 사랑..
 
그 뒤, 나는 정말 하늘 아래 바람 부는 곳으로 이사가게 되었다.
그 과정은 지붕뚫고하이킥의 에피소드와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코믹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다. (기회가 되면 나누자.)
 
내가 소원하던데로 하나님이 귀기울이시고 기도를 응답하셨으니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전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나는 비 내리는 집에서 얼마나 기뻐하고 찬양했는지 모른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내게 가르치신 것은
어느 곳이든 하나님은 나를 최고의 사랑으로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그 사랑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누리느냐 아는 것은
좋은 집, 햇볕아늑한 거실에 속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 공로 없지만 우리에게 은혜를 비추시는 그 분의 전적인 은혜 때문이다.

아내와 함께 신혼집에서 살고 있을 때
어느 가까운 목사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비공개로 입찰 하나가 있다며.. 너무나 귀하다는 비밀정보를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그 분께는 감사하지만 그 분의 제의를 거절한 이유는
계약기간이 끝나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쫓겨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이 곳으로 인도하셨다면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다른 어떤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가졌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해주셨다면
다음으로 인도하시는 분도 그분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내가 살아가면서 낙담하지 않을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볼 때
가장 간단한 답은 그 분이 바로 내 아빠 되시기 때문이다.
물이 새고 곰팡이 핀 집이라 할지라도
내게 속한 것은 감사이며 아버지께 속한 것은 옳음이며 사랑이시다.
 
- 사실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처음 일기를 시작하게 된 동기를 기뻐하시며
좀 더 자유롭기를 말씀하셨다.
마치 몇 년 전 방송중에 내 자랑이 될까봐 고민했던 그 때처럼..



가끔 럽앤포토그래퍼 이요셉씨의 홈페이지를 들른다
내가 하나님께 고백하고 싶지만 어리석고 죄로 가려져서 미처 올리지 못하는 기도나 표현들을
마치 내 마음 속에 들어와봤던 것처럼 그러한 나눔들을 내 보여주시기 때문이다
그분 부부께서 나누는 대화도 나와 민석오빠의 대화와 참 닮아있다
내가 이 분들만큼 맑거나 하나님과 깊이 친밀하여 흔들리지 않거나.. 등의 내 속성들은 잠시 뒤로 밀어두고
우선 하나님께 내 맘을 열게하는 작은 흔들림을 전해주셔서 늘 감사한데,
어떻게 답례할 수 있을까..잠깐 생각해봤더니 금새 알 것만 같다

내가 하나님과 늘 조금씩 더 친밀하고
매일 조금씩 더 사랑하며 나아가는 것

그 본질로 기뻐해주실 것 같다 는 생각 :)


내일  순서대로 대표기도 차례가 왔다

마침 내 생일이기도한...
대표기도를 지금까지 네번 정도 드리게 되었던 것 같은데
-
예전 크리스마스 예배 때

주님과 다시 만나고 맞이한 감격의 크리스마스에 기도드리는 그 기쁨과 감격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회사를 다니게 되고 피곤한 일상들을 핑계로 새벽기도를 지키지 못하게되고
귀가길에 집 앞 교회에 들려 기도하는 스케줄도 녹록치 않아지면서 이러한 변명들로 어느새 게을러져버린 하나님과의 대화시간.
늘 너무 아쉽고 죄송하고 고치고 싶은데 자꾸만 되풀이되는 죄된 습성 습관


요즘 읽고 있는 '헬무트 틸리케' '세계를 부둥켜안은 기도'에서 이러한 대목이 인상깊었다
"
저는 큰 이방 출신입니다. 저는 당신의 아들이라고 불릴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아버지여, 당신의 이름은 제게 거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당신의 이름을 백번이나 부인했습니다."
"
아버지여, 당신의 이름은 제 삶에서 무서울 정도로 미미한 역할 만을 하고 있습니다. 제게는 윗사람의 이름, 오늘날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름, 지극히 사랑스러운 사람의 이름이 당신의 이름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습니다. 그 이름들이 제게는 당신의 이름보다 더 당연지사인 경우가 많습니다
."
"
아버지여, 저는 사실 아버지의 뜻이 늘 이루어지지 않도록 만듭니다. 하필이면 당신께서 제 삶을 놀랍도록 또 은밀하게 이끌어 주시는 바로 그때에, 당신의 자녀인 저는 당신 품 안에 있으면서도 늘 당신께 반항하거나 당신께 불평을 털어놓습니다
."

"
너 때문에 내 이름이 모욕당했다. 네가 처한 환경 속에서, 네가 네 동료들과 함께 있을 때, 너 자신의 삶에서 내 이름이 모욕을 당하였다. 네가 네 말과 행위로 내 이름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
"
너로 인해 내 나라가 임할 수 없다. 너 자신의 삶은 온갖 빗장과 장애물과 방어구역으로 가득 차 있다. 너는 네 삶을 주장할 확실한 독점권을 철저히 너에게 귀속시켰다. 너는 내가 네 심중에 들어가 말할 수 있는 권리조차 앗아가 버렸다. 그런 네가 어떻게 네 민족 가운데서 내 나라가 임할 길을 예비하는 자일 수 있겠는가
?"
"
네가 그 사람이다. '아버지여, 진정 이 모든 것을 당신께 맡깁니다'라고 늘 떠들어 대면서도 은밀히 네 멋대로 계속 살아가는 그 사람이 바로 너다. 이것 하나만이 아니다. 너는 이렇게 말한다. '내 일에는 당신 이름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내 가족의 일에도 당신을 끼워 줄 수 없습니다. 이 영역에서는 다만 내 이름만 드러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내게는 이런저런 소질이 있고, 인생이란 것이 이런저런 것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

그럼에도불구하고
even there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구별하길 원한다.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